국민관심은 '치킨'이지 '치킨게임' 아냐...BBQ·bhc, 입맛대로 해석도 '정도껏' [민병권의 딴짓 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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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관심은 '치킨'이지 '치킨게임' 아냐...BBQ·bhc, 입맛대로 해석도 '정도껏' [민병권의 딴짓 딴지]
  • 민병권
  • 승인 2022.11.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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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bhc가 2017년 4월 BBQ를 상대로 제기한 상품공급·물류용역계약해지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결과를 두고 BBQ와 bhc가 서로 자기네가 승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든 피고든 판결을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지만, 일각에서는 수 년 간 이어진 이번 치킨게임이 단지 해석상의 차이가 아닌 자존심 싸움 양상을 보이는 점을 들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bhc는 2004년부터 10년간 BBQ의 자회사였지만, 2013년 BBQ가 해외 진출 자금 마련을 이유로 bhc를 미국계 사모펀드인 CVCI(현 로하틴 그룹)에 매각했다. 매각 당시 bhc는 소스, 파우더 등을 BBQ에 독점 공급하고, BBQ는 bhc가 약 20%의 영업이익률을 보장받도록 상품 대금을 조정해주는 조건으로 10년 전속 상품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BBQ는 2016년 bhc가 BBQ 사내그룹웨어에 무단 접속해 회사 문서를 불법 열람하고 다운로드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서울동부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동부지검은 그해 12월 bhc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다음 해 2017년 bhc가 200여 회의 불법접속과 700여 건의 문서를 다운로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동부지검은 불법행위가 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 누가 지시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불기소 처리했다. 죄는 있으나 처벌할 대상을 특정하지 못해 재판에 넘기지 못한 것이다.

BBQ는 비록 bhc에 처벌을 가할 수는 없을지라도 회사 기밀문서에 불법 접속하고 다운로드한 점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린 중대 사안으로 간주하고 bhc와의 '상품공급과 물류용역'에 관한 계약을 신의성실 위반을 이유로 해지했다.

bhc는 "검찰이 불기소 처리한 사건을 두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며, BBQ를 상대로 일방적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 및 물류용역대금 미지급금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각각의 소송 가액은 537억 원과 2400억 원이었다.

2021년 1월 상품공급대금 소송 1심 재판부는 "BBQ는 상품공급대금 손해 배상과 관련해 총 290억6500여만원을 bhc에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다음 해 2월 물류용역대금 등 청구 소송 1심에서도 해당 재판부는 "BBQ가 bhc에 물류용역대금으로 총 33억7000여만원, 손해배상금으로 99억7000여만원 등 총 133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비록 bhc가 청구한 두 건의 손해배상금의 14% 정도만 인정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기나긴 치킨게임의 승자는 bhc였다. BBQ는 2018년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2021년 9월 패소하기도 했다.

bhc의 2건과 BBQ 1건 등 3건의 소송은 양쪽이 모두 항소하는 바람에 2심이 진행되었으며, 2심 재판부는 상품공급 및 물류용역 계약 관련 2건(bhc 제기)과 영업비밀침해 손배소송 1건(BBQ 제기)이 같은 원인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보고 병합 진행한다. 

지난 24일 이렇게 병합된 2심 재판 결과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상품공급 손배소에서 bhc가 일부 승소로 받은 가지급액의 약 60%에 해당하는 201억 원을 다시 BBQ에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물류계약 손배소에서는 계약 해지의 책임이 bhc에도 일부 있음을 적시하고 이에 따라 bhc는 (상품공급 손배소처럼) BBQ로부터 1심 결과에 따라 받은 133.5억 원 중 70억 원을 BBQ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BBQ가 제기한 영업비밀침해 손배소는 1심 판결을 유지해 BBQ 패소 결정을 내렸다.

이런 2심 판결의 의미를 두고 BBQ와 bhc는 각기 다른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bhc는 승소라고 적시된 온라인 판결문 내용 등으로 '우리가 승소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BBQ는 '애초 1심 결과로 상대에 지급했던 손배액의 60% 정도를 되돌려 받은 결과이기 때문에 이는 실질적인 승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BBQ는 "2심 재판부가 bhc의 악의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1심 결정의 대부분을 뒤집어 손해배상 금액을 대폭 감경한 것은 BBQ가 주장한 억울한 부분을 상당 부분 반영해준 결과"라며 "판결에 아쉬운 부분은 없지 않으나, bhc가 항소심에서 제기한 청구금액 대부분이 기각되고, 일부 금액만 인용된 점은 많은 진전"이라고 밝혔다. bhc가 청구한 애초 손해배상 금액은 과다하고, 다소 억지라는 주장이다.

반면 bhc는 "수 년간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BBQ 측이 매번 ‘사실상’ 승리라는 주장이 이번 상품, 물류, 영업 비밀 관련 항소심 패소로 무리하고 허황된 것이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BBQ가 통보한 두 건의 계약 해지는 일방적이었음과 영업비밀 침해 또한 BBQ가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이 확인됐다는 입장이다.

하루 뒤인 28일 오후 10시에 대한민국과 가나의 월드컵 2차전 경기가 열린다. 요즘 치킨업계는 카타르 월드컵으로 인해 4년 순환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1차전 경기날 BBQ와 bhc는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각각 170%, 200%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자존심을 건 양사의 치킨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치킨' 그 자체에 집중했다. 

승소한 자는 많지만 승자는 없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같은 감정적 소모전은 이제 그만 놓아야 할 때다. 하나의 판결을 두고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민병권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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