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史, 예술가, 황제의 이야기를 품은 冊 '자금성의 그림들' [kdf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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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史, 예술가, 황제의 이야기를 품은 冊 '자금성의 그림들' [kdf book]
  • 이수빈
  • 승인 2022.12.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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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 지음/ 신정현 옮김/ 정병모 감수/ 나무발전소 출판사
베이징 고궁박물원(자금성) 시청각연구소 소장(예술학 박사)인 '주용'의 고궁시리즈 중 그림이야기. 

'자금성의 그림들'은 현재 고궁박물원인 자금성에 있는 기원후 300년대 동진시대의 그림부터 18세기 청나라 견륭제 때의 그림까지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시간이라는 강력한 적과의 싸움에서 문화혁명이라는 격변을 견디고 살아남은 중국 미술의 에센스가 담겨있다.

유홍준 박사는 책의 서문에서 이름모를 예술가에 빙의한듯 '나의 생명이 이 그림으로 연결돼 있으니 언젠가 여러분과 만날 것이다' 라고 썼다. 이 구절은 자금성의 그림에만 해당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여항의 민속화를 그린 이름모를 화가에게도 대입할 수 있는 글귀다.

자금성의 그림들 저자 주용
저자인 주용은 예술학 박사로 베이징  고궁박물원 시청각 연구소 소장으로 '주용의 고궁 시리즈' 12권을 저술했다. 그가 저술한 내용은 400만자 이상이라고 하는데 감이 안잡혀 작가 조정래가 자신의 집에 전시해 두었던 소설 '태백산맥' 10권의 원고지가 기억나 환산해보니 (1만5700장X200자=3백14만자) 대략 주용의 저술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직장인 고궁박물원, 자금성으로 출퇴근하며, 그곳에서 본 자신의 일감들, 그림을 보고 글을 써 책으로 출판했다. 

자금성에 남아 있는 중국역사의 흔적들, 역사 속 인물들의 그림, 글귀들을 보며, 상상을 하고 그림속 인물들과 대화를 하고, 그 인물들의 이야기를 조사하고, 그 인물들이 살았던 공간, 그 인물들의 흔적이 남은 공간들을 찾아 다닌다.

주용의 일련의 활동들은 책 '자금성의 그림들' 안에 녹아있다. 어찌보면 방대한 중국의 역사를 그림이라는 소재로 주용의 입담 스타일로 풀어간다. 그 입담을 따라가다 보면 화가는 저 멀리 사라지기도 한다.

자금성의 그림들, 고개지부터 건륭제까지
자금성의 그림은 중국 동진의 고개지의 '낙신부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책에 게재된 그림은 고개지가 그린 진본은 아니고 송나라 시대의 모본이다. 그림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동진 시대의 화가 고개지를 친절하게 소개하지 않는다. 

고개지의 '낙신부도'중 일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부지런해야 한다. 책에 나온 내용을, 저자인 주용이 하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포털 사이트 검색창을 열어놓고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 주용은 장구한 중국사와 해박한 미술지식을 풀어놓지만, 평범한 한국의 독자들은 저자의 유려한 이야기를 따라가기 숨가쁘다.

자금성의 그림이야기는 풍경화의 시조이자 회화사의 시조인 고개지의 '낙신부도'를 두고 두루마리 그림을 보는 작가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두루마리 그림은 중국인의 발명품이라는 얘기는 역시 빠지지 않는다. 또 두루마리 그림에서 무한을 느끼는, 사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두루마리 그림에 대한 예찬이 이어지고.

이어 이야기는 화가 고굉중의 '한희재야연도'로 넘어간다. 한희재는 남당대의 귀족으로 황제도 놀랄 정도로 부패와 호화호식으로 살다간 호인이다. 다 즐기고 가겠다는 의지로 가산을 탕진해 후회없이 살다간 인물.

조국인 남당이 패망하기 딱 4년 전에 죽어 오욕을 면한 행운아. 황제는 부정부패하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 화가 고굉중을 파견, 한희재의 '밤의 야연'을 영화보듯 그림으로 봤다. 미녀들과 권력자들의 야연. 

'한희재야연도'중 일부. 그림 속 한희재의 표정. 연회를 즐기는 표정답지 않게 무겁고, 무표정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희재의 연출이었다고 작가는 해석한다. 망해가는 나라를 어찌할 수 없고, 황제의 견제는 피해야 하고, 때문에 그는 주지육림에 빠진 호색한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화가의 눈은 예리하다. 

한희재의 차림은 주지육림에 빠진 행색이었지만 눈빛과 표정은 무겁고 엄격하기만 하다. 고굉중은 한희재의 허장을 간파하고 그림안에 힌트를 심어 놓은 것이다. 이런 숨겨진 이야기를 화가를 스파이로 파견한 황제는 몰랐지만 한희재와 화가 고굉중,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대의 작가 주용은 파악하고 있다. 

장택단 '청명상하도'

송대의 한림원 화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 두루마리 그림은 송나라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함께 한다. '정강의 치', 송 휘종대의 한족 문화의 멸(滅), 송황실의 치욕은 한족의 절치부심에도 불구하고 금나라에, 또 중원으로 진출한 원나라 치하에서 다시는 복구되지 못한다. 

이런 부초같은 시류에 그림 '청명상하도' 역시, 송나라 황실에서 금나라 황실로 다시 원의 황실, 명황실을 거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에게까지 이어지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안착한다.

작가는 자금성의 그림들을 이런 식으로 동진시대부터 청대의 건륭제까지 그림과 그림속 인물, 화가의 당대의 삶, 위정자 속내까지 헤아리는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거듭 아쉬운 점은 책을 읽어가는 내내 일반 독자들은 작가 주용이 읽어주는 그림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당대 상황을 그려내기 위해 검색을 해야 하는 점이 계속 부담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흐름은 자주 끊길 수도. 동진시대부터 청나라 건륭제까지 4세기부터 18세기까지 다루는 내용이라 분량이 약 630 여 페이지. 출퇴근 용으로 지하철, 버스에서 읽거나 카페에서 여유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다가 오는 새해 집에 있는 며칠 맘 잡고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수빈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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