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을 '나전장의 도안실'展, 서울공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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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부모님과 함께 보면 좋을 '나전장의 도안실'展, 서울공예박물관
  • 이수빈
  • 승인 2023.05.1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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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지난 16일부터 근현대 나전칠공예품을 비롯해 나전장인(匠人)들의 작업 도안(圖案)이 공개되고 있다.

나전공예, 흔히 부모님 세대의 자개장을 비롯한 가구들. 이제는 카페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 부모님도 번듯한 개량 한옥을 구입하시자마자 안방을 12자 자개장과 화장대와 문갑으로 두르셨다.

전시장 입구의 미디어 아트. 사진=이수빈
전시장 입구의 미디어 아트. 사진=이수빈

화장대와 장롱은 내 어머니의 비밀공간으로 자개장 서랍 속에는 색색의 실패와 사용하지 않고 아껴두신 립스틱, 브로치 등 패물함 속에 들어가지 않은 액세서리들이 있어 나의 좋은 놀이터가 됐던 가구다. 항상 어머니는 소청으로 만든 마른 수건으로 자개 가구를 반들반들 윤이나게 닦곤 하셨다.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돈을 주고 윤기가 흐르는 멀쩡한 가구를 버려야 한다는 것에 몹시 맘을 상해하셨다.

나전공예 장인의 공방과 염색한 나전
나전공예 장인의 공방과 염색한 나전

자개장, 나전은 이렇게 나와 부모님 시대의 추억거리다. 집집마다 있었던 생활용품이 이제는 전시실에서나 볼 수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의 '나전장의 도안실'전시는 한때 집집 안방을 차지하게 된 나전공예품의 발달, 이를 이끌었던 근현대의 나전장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나전공예품과 작품도안을 전시한다.

나전공예의 중시조격인 전성규 장인의 작품과 도안
나전공예의 중시조격인 전성규 장인의 작품과 도안 위. 나전칠 산수문 서류함과 도안/ 아래 나전칠 산수문 탁자.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 방점을 둔 전시품은 나전공예의 중시조 격인 전성규 장인과 그의 제자로 나전 공예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기며 계보를 이어간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 민종태, 김태희 장인들의 작품디자인, 도안이다.

전성규 장인의 도안과 나전공예작품.
전성규 장인의 나전칠 산수문 도안과 벼루함.

나전칠기공예품 위주가 아닌 ‘그림으로 보는 나전’을 주제로, 나전작품이나 가구를 제작하기 위한 설계도 역할을 했던 ‘나전도안’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게 전시한다.

우리나라 근현대 나전칠기를 대표하는 장인 6인의 작품 60여 건과 도안 36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그중 40여 건의 작품과 270여 점의 도안은 최초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 근현대 나전공예의 발달 과정과 주요 장인들의 특징, 기법 등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전시다.

심부길 장인의 도안과 작품.
심부길 장인의 만자도안, 봉황문 도안과 작품 나전칠싸리만자문삼층농

나전 장인들은 대부분 산수화나 화조도 등을 화가들 수준으로 그렸다고 한다. 도안은 나전 작업의 가장 기본이 됐기 때문이다. 나전 공예의 중시조 격인 전성규 장인은 일제강제병합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나전칠 분야에 ‘근대적 도안’의 도입과 ‘공업용 실톱’의 확산을 주도하며 나전 칠공예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장인이다. 귀국 후 삼청동에 공방을 열어 후일 나전공예의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 민종태, 김태희 등 후학을 길러냈다.

민종태 장인의 도안과 작품.
민종태 장인의 도안과 나전칠 삼층롱 작품.

전시는 각 장인들의 나전공예품, 이를 제작하기 위한 도안들, 제자들의 인터뷰, 장인들의 주요 작업기법 등을 소개한다.

도안에도 장인들의 개성이 반영돼 있다. 전성규와 송주안 장인은 주로 붓과 먹으로 도안을 그려내어 전통 수묵화를 연상시켰고, 먹, 세필로 그린 김봉룡 장인의 도안은 현대의 로트링 펜으로 그린 세밀화만큼이나 세세하고 치밀하다. 민종태는 강한 먹선으로 십장생 등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고, 김태희 장인의 도안은 꽃과 새, 해금강 풍경 등을 연필로 섬세하게 또 컬러로 그린 것이 전시돼 있다.

김태희 장인의 도안과 나전칠기
김태희 장인의 초충도 의걸의장과 도안.

보통 나전공예품은 옻칠한 검은 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전시된 작품 중에는 화려한 하기 그지없이 붉은 주칠을 한 작품들도 있다. 나전공예는 통영과 서울에 공방이 많았는데 나중에 원주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계기도 이 옻칠을 위한 옻나무가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전성규 장인의 산수문탁자. 사진=이수빈
전성규 장인의 산수문탁자. 사진=이수빈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전시되는 수곡 전성규의 '나전칠 산수문 탁자'는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으로 확인됐다. 이 작품과 동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사한 문양의 탁자 두 점을 더하여 총 3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전시전경. 사진=이수빈
전시전경. 사진=이수빈

이외 삼성가 이병철 회장의 서재 가구를 제작한 민종태 장인과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등 국빈을 위한 청와대, 경무대 선물용 나전 작품을 제작한 김태희 장인 등의 작품이 수많은 사연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독특하게 김태희 장인은 검은색 일색의 나전칠공예품에 홍색, 녹색, 적색 등 화려한 컬러를 입힌 가구들을 제작했다.

전시를 기획한 정은주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나전공예와 관련되다 보니 관람객 연령층이 높은 편이다. 나전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은 4시간에 걸쳐 꼼꼼히 전시품을 관람하신 분도 있다. 민종태, 김태희 장인의 기증품으로 받으면서부터 전시를 구상, 약 2년 동안 기획해 공개한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나전장의 도안실'展의 전시 기간은 7월 23일까지다. 어느때고 좋지만 가정의 달인 5월, 부모님과의 추억거리를 나눌 기회를 한 번 더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이수빈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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