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신주사기' 출간...세계 최초 '삼가주석'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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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신주사기' 출간...세계 최초 '삼가주석' 번역본
  • 허남수
  • 승인 2020.03.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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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사마천의 '사기' 본기 12권과 이에 주석을 단 대표 주석서 '집해'·'색은'·'정의'를 번역한 새로운 사기를 출간했다. 세계 최초로 삼가주석을 모두 번역하고 우리의 시각으로 새로운 관점의 주석까지 추가한 '신주사기' 9권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세가'나 '열전'의 일부 장면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재미있는 책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제대로 알려고 하면 방대하고도 난해한 역사서다. 예로부터 '사기'를 풀이한 수많은 주석서들이 난무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수십 종의 주석서 중 대표적인 주석서가 남조 송나라 배인(裵駰)의 '집해(集解)'와 당나라 사마정(司馬貞)의 '색은(索隱)', 당나라 장수절(張守節)의 '정의(正義)'를 꼽는다. 이를 삼가주석(三家注釋)이라고 한다. 삼가주석을 보지 않고 '사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삼가주석은 본문보다 방대하고 동양 고대 사상과 제도, 관습 등에 해박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때로는 사마천의 본문과 충돌하기도 한다. 그래서 삼가주석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사기 연구의 길이기도 하다. 

그간 일본 명치서원(明治書院)에서 1973년부터 '신역한문대계(新譯漢文大系)'의 하나로 '사기(史記:전 15권)'를 간행한 것이 중국어권 이외의 나라에서 수행했던 가장 방대한 사기 편찬사업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사기'도 삼가주석 전체를 완역하지는 못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사기연구실에서 번역하고 신주를 단 '신주사기'는 중국어권 이외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사기' 본문과 삼가주석을 모두 번역하고 새로운 관점의 '신주(新註)'까지 달았다. 롯데장학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는데, 이번에 간행된 본기만 9권이다. '지'·'표'·'세가'·'열전'까지 모두 간행되면 총 40권을 상회하는 방대한 프로젝트이다.  

중국고대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난제는 중국사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것이다. 중국민족은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따서 한족(漢族)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禹)임금의 하나라에서 '하(夏)' 자를 따고 섬서성 화산에서 '화(華)' 자를 따서 하화족(夏華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한족, 즉 하화족 역사의 시작이 언제부터냐는 것인데, 사마천은 황제(黃帝)부터 시작하는 '오제본기'로 중국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마천의 이런 설정에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오제 전에 삼황(三皇)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색은'의 편찬자 사마정은 사마천이 삼황을 삭제한데 불만을 품고 복희, 신농, 여와씨를 수록한 '삼황본기'를 따로 편찬했을 정도로 사마천의 계보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사마천은 오제의 시작을 황제로 설정했지만 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215~282)은 '제왕세기'에서 삼황도 수록하고 황제가 아니라 소호(少昊)를 오제의 첫 번째로 꼽았다. 사마천이 황제부터 중국사를 시작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마정과 황보밀 등은 사마천이 삼황과 오제를 삭제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중국은 최근 산동성(山東省) 남부 임기(臨沂:린이)시에 거대한 동이문화박물관을 열었다. 여기에 4명의 동이족 군주를 전시해놨다. 태호 복희씨·소호 김천씨·치우·순임금이 그들이다. 삼황의 시작이 태호 복희씨이기 때문에 삼황부터 '사기'를 기술하면 한족의 중국사가 아니라 동이족의 중국사가 되기 때문에 삼황을 삭제한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은 김유신의 혈통에 대해 "헌원(황제)의 후예요 소호의 후손이다"라면서 "남가야 시조 김수로왕은 신라와 같은 성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해 김씨·김해 허씨·인천 이씨 등 700만에 달하는 가락종친들이 모두 소호 김천씨의 후예라는 뜻이다.
 

사마천이 설정한 오제 및 하은주 시조 계보도
사마천이 설정한 오제 및 하은주 시조 계보도

이처럼 소호는 동이족임이 너무나 명백하기에 사마천은 소호도 지웠다. 삼황의 시작이 태호 복희씨고, 오제의 시작이 소호 김천씨인데, 태호나 소호부터 시작하면 한족의 중국사가 아니라 동이족의 중국사가 되기에 사마천은 태호와 소호를 지우고 황제부터 시작하는 중국인의 '사기'를 작성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지우고 한족, 즉 하화족의 중국사를 서술했다. 얼핏 봐도 중국 남방사람들과 북방사람들의 생김새가 다름에도 모두 한족이라는 개념은 사마천의 '사기'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신주사기'는 때로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그 근거를 찾고, 때로는 고대의 여러 학자들은 물론 청나라 고증학파와 민국시대(民國時代:1912~1949) 고사변학파들의 주석까지 집중적으로 연구해 중국사의 계통을 바로잡으면서 동이족의 고대사를 복원해 냈다. 

1권 오제본기의 '사마천이 설정한 오제 및 하은주 시조계보도(109쪽)'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작성한 계보도다. 이를 통해 ①황제, ②전욱, ③곡, ④요, ⑤순의 오제는 물론 하·은·주(夏殷周) 3대의 시조가 모두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신주사기'는 사마천이 쓴 본문과 삼가주석을 모두 번역하고 그 아래 원문을 수록했다. 의역을 최대한 피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직독직해를 원칙으로 삼아 번역했다. 그래서 한자를 조금 아는 독자라면 원문과 대조하며 사기 원문을 읽는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단순한 중국사가 아니라 하화족의 역사 속에 숨겨진 동이족의 역사를 찾는 여정이야말로 현재 정체성의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가 '신주사기'를 읽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사진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허남수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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