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은 풀뿌리 문화공간, 도서정가제 무너지면 책방도 무너져 [임후남의 시골책방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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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은 풀뿌리 문화공간, 도서정가제 무너지면 책방도 무너져 [임후남의 시골책방 편지]
  • 박홍규
  • 승인 2020.09.13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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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파랗다. 너무 맑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40일이 넘는 긴 장마가 끝나니 태풍이 연이어 왔다. 장마 때 폭우로 부서진 집을 수리하는 중인데 자꾸 멈춘다. 바로 어제도 폭우가 쏟아졌다. 집 공사는 그래서 자꾸 멈춘다. 코로나19와 긴 장마, 폭우, 태풍.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자 그나마 뜸하던 책방의 발길은 뚝 끊겼다. 코로나19 감염 걱정으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오늘 오전에는 갑자기 성인 남성 4명이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저, 어떻게 오셨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그들 역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커피 되나요?”
이런! 한동안 손님이 없다 보니 그만 내가 책방과 카페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것이다. 근처에 볼일을 보러 왔다는 그들은 책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책은 읽기 싫은데 책 있는 데 오니까 좋네.”
이 책 저 책 열심히 살펴보길래 나는 기대에 차서 그들 중 하나라도 책 한 권을 집어 계산대로 갖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희 밖에서 커피 마시고 갈게요.”
흠! 결국 아무도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째 손님이 없다 커피를 넉 잔이나 판매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책 한 권을 파는 것보다 커피 한 잔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다. 책의 마진은 평균 25%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커피 한 잔을 파는 것보다 책 한 권을 팔면 훨씬 기분이 좋다.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나는 책방을 왜 할까.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이 시골 숲속에서 책방을 왜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방 하는 내가 나는 좋다. 책방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작가들과 북토크를 진행하고, 클래식 연주자들과 콘서트를 진행하는 내가 나는 참 좋다. 

오는 11월 도서정가제 개정 시한을 앞두고 문체부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 시골책방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사실 나는 내가 사는 집에서 책방을 하니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임대료를 내는 작은 책방들은 결국 버티지 못할 것이다. 특히 큰 기업도 무너지는 지금 같은 시대에 버틸 힘이 없다.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출판사는 좋을까? 그렇지 않다. 일부 대형 출판사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많은 중소 출판사들은 책 출판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팔릴 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출판사는 할인 판매를 생각해서 책값을 조금 더 올릴 것이다. 당연히 이 몫은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간다. 서점에서는 책을 많이 팔아야 하니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진열해놓을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작은 책방을 하는 나는 할인 판매를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작은 책방들은 할인 판매가 어렵다. 지금도 우리 책방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터넷 서점처럼 10% 할인이나 적립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이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서점처럼 할인이나 적립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 공급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직거래하는 그곳들과 비교해 10~20% 책을 비싸게 공급받는다. 뿐만 아니라 현금으로 구입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반품이 불가하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그 공급률이 제각각 또 달라질 것이다. 

순수한 독자 입장에서 보면 도서정가제가 왜 있어야 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책도 상품이니 각 가게마다 할인해서 판매할 수도 있고, 원 플러스 원 행사도 할 수 있다.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 사실 나도 그렇게 책을 구입했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책 한 권을 사면 책 한 권을 더 얹어 줘서 책을 샀었나 싶다. 인쇄소에서 똑같이 책을 찍어 내니 다른 제품과 같긴 하지만, 책은 과자와도 다르고, 아이스크림과도 다르다! 책은 책이다. 달리 뭐라 말할 수 없이, 책은 책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하지만, 나는 책을 읽어서 밥을 얻었다. 일찍이 책 읽는 맛에 빠진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글 쓰며 사는 삶을 꿈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밥벌이를 한 것도 글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좀 나이 들어 서울을 떠나 시골에 책방을 차렸다. 젊은 시절 같지 않아 욕심이 덜하니 책방 한쪽에서 텃밭을 가꾸며 먹고 산다. 

손님 하나 없어도 나는 종일 바쁘다. 작가와의 만남도 기획하고, 클래식 콘서트도 기획하고, 어떤 책을 들여놓을까 이 책 저 책 훑어본다. 또 글쓰기 수업도 진행하고, 독서 모임도 진행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는다. 시골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작가와의 만남, 클래식 공연 등을 통해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거창하게 지역 문화를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동안 살아온 이런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다 보니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골책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책을 판매한다. 책이 많이 팔릴까? 그래도 이곳까지 찾아와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적립도 되는 인터넷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을 이곳까지 와서 구입하는 것은 이곳에서 ‘발견’한 책들이 있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사람 냄새’를 맡기 때문이다. 비록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사람 냄새가 아닌가. 그리고 그 바탕에는 도서정가제가 있다.

가끔 사람들이 찾아와 묻는다. 책방을 하고 싶은데 해도 되겠느냐고. 나는 무조건 하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방이 마을 곳곳에 생기면 그것이 풀뿌리 문화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책방이 아무리 많이 생겨도 같은 책방은 없다. 저마다 다른 책을, 저마다 다른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 책방을 가도, 저 책방을 가도 맛이 다르다. 모든 작은 책방들은 책방 주인이 고른 책들만 갖다 놓고 자기 색깔로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일률적이거나 획일적이지 않은 이유다.(대형서점에서 여기저기 놓인 책들, 인터넷 서점에서도 끊임없이 보이는 책들. 눈 밝은 독자라면 왜 그렇게 자주 띄는지 한 번쯤 생각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같은 작은 동네책방이 많이 생기고 있다. 물론 또 많은 책방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렇게 책방들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도서정가제가 바닥에 깔려 있고, 다양한 문화가 자리잡는 풍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달리고 경쟁해야 된다는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 자신만의 숨소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고 살기 힘들어도(몇 곳을 제외하면 영세하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형편이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방 문을 열고 혼자 흥에 겨워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할 수는 없는 일. 특히나 코로나19 이후의 환경은 짐작조차 두렵다. 이 와중에 도서정가제를 폐기하겠다는 것은 풀뿌리를 아예 뽑아내겠다는 것이 아닐까.

시골에 살면서 풀 뽑는 게 일이다. 내가 풀을 뽑는 곳은 내가 가꿔야 할 상추밭이거나 화초밭이다. 그 외 사방은 풀들이 자란다. 이름도 모르는 다양한 풀들이 어느 날 꽃을 피우면 좋아서 한참 들여다본다. 내가 모르고 그곳에 필요없기 때문에 풀이지, 모두 저마다 이름이 있고 몫이 있다. 그래서 시골책방 마당은 풍성하다. 만약 깔끔한 상추밭과 화초밭만 있다면 좀 질리지 않을까? 

교복을 입고, 단발을 하고, 획일화된 시절을 살아온 나는 지금처럼 다양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참 좋다. 우리 아이들은 더욱 더 다양한 세상에서 각자의 숨을 쉬며 살게 하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지 않아도 책방에 오면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지적 위로’를 누리게 하고 싶다. 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팔아야 하지만. 

글쓴이, 시인 임후남은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사, 웅진씽크빅 등에서 글 쓰고 책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펴낸 책으로는 '시골책방입니다' '아이와 길을 걷다 제주올레'가 있고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가 있다. 

덧붙이는 글 ㅣ 이 기사는 '포천좋은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김승태 에디터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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