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나를 의심하더니 피고 승? [변호사 '비무'의 달빛물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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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나를 의심하더니 피고 승? [변호사 '비무'의 달빛물든 이야기]
  • 박홍규
  • 승인 2021.01.06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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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건이 소송 계속 중인 경우 절차가 현재 어느 상태인지 및 판결 선고된 경우 승패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사법부가 제공하는 '사건검색' 사이트의 '나의 사건검색'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통해 절차의 정도나 선고의 결과에 관한 구체적 내용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사건검색'을 통해 선고 결과를 확인하면 민사사건의 경우 '원고 승', '원고 일부승', '원고 패' 중 어느 하나이다. 금전 청구 소송의 경우 원고가 청구한 원금 중 1원만 기각되어도, 원고가 청구한 이자율이나 이자기간 중 일부만 기각되어도 '나의 사건검색'은 '원고 일부승'이라고 쓴다.

'피고 승' '피고 일부승' '피고 패'라고 쓸 수 있는가? 틀린 말은 아니다. '원고 승'이 곧 '피고 패'이고, '원고 일부승'이 '곧 '피고 일부승'이며, '원고 패'가 곧 '피고 승'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견을 전달할 때는 이렇게 써도 물론 문제가 없다. 

그런데 법적 시각으로는 옳은 표현이 아니다. 의미적으로는 같지만 법적 시각으로는 '원고 승', '원고 일부승', '원고 패'가 옳은 표현이다. '나의 사건검색'에서도 후자로만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원의 심판대상이 원고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원고가 피고에 대한 어떤 권리를 주장하여 제소(提訴)한 바, 법원은 원고가 주장하는 청구권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심판한다. 원고와 피고의 주장과 증거를 종합하며 판단한 결과, 원고가 청구하는 전부가 인정된다고 판단하면 '원고 승', 그 일부만 인정된다고 판단하면 '원고 일부승', 전혀 인정된다고 판단하기 어려우면 '원고 패'로 선고한다.

이는 증명책임의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판사는 신이 아니다. '척 보면 딱 아는' 존재가 아니다. 일반인과 같이 불완전 이성의 존재이다. 다만 이들은 법적 시야가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이다. 그래서 사회 약속인 법 관련하여 그 선수들인 이들에게 심판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판사도 백지상태에서 출발한다. 판사의 백지에 가장 먼저 낙서하는 자는 공격자인 원고이다. 원고는 소장이라는 붓으로써 판사의 백지에 피고로부터 받아야 할 무엇이 있다라고 일필휘지한다. 이때 판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원고의 일필휘지 주장을 의심하는 일이다.

판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심을 유지한 채 판단을 보류하고 원고의 일필휘지 소장을 방어자인 피고에게 보내 확인해봐야 한다. 그 확인과정을 통해 판사는 종국적으로 원고의 피고로부터 그 무엇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심판한다.

소장을 받은 피고가 원고의 주장에 대해 "맞다"라고 인정하는 경우 판사는 원고의 주장에 대한 의심을 거두어야 한다. 이를 피고의 자백이라 한다. 따라서 피고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잘 따져 신중하게 답변해야 한다.

소장을 받은 피고가 원고의 주장에 대해 아무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 판사는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민사소송법은 전자를 택하고 있다. 이를 피고의 의제자백이라고 한다. 따라서 소장을 받은 피고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으므로'라는 생각으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아서는 결코 안 된다.

소장을 받은 피고가 원고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거나 "그런 일 없다'라는 등으로 답변한 경우 판사는 원고에 대한 의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이를 피고의 부인(否認)이라고 한다. 이 경우 원고는 자기에 대한 판사의 의심을 없애야 한다. 입증이고, 그 책임을 입증책임이라 한다.

원고가 입증책임을 열심히 한 결과 판사가 원고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고 원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이 들면 '원고 승'의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반면 원고가 입증책임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원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으면 그 의심은 침전되어 남는다. 개운치 않고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긴가민가한 상태일 때는 '원고 패'의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그래서 '원고 승', '원고 일부승', '원고 패'라 쓰지 '피고 승' '피고 일부승' '피고 패'라고 쓰지 않는 것이다.

피고 항변의 구조도 같고, 항변까지 포함한 판결 선고의 경우의 수도 같다. 소송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체법적 및 소송법적 내용 모두 훨씬 어렵고, 그 지식이 많고 세련돼야 승소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내가 직접 해야지'라는 어설픈 생각은 하지 말라. 이에 일반인들은 유불리를 구분치 못하고 주장하므로 나중에 보면 자백인 경우가 많다. 이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변호사 '비무'는 '디케가 눈을 뜨고,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석양 전에 나는 것은 모두 불가한가?'라고 의문하며 오늘도 서초동에서 사랑과 일 간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법률가이자 글쓰는 사람이다.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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