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Free!] 가스라이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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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Free!] 가스라이팅(1)
  • 박주범
  • 승인 2021.04.07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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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유튜버의 사생활을 두고 연일 공방이 뜨겁다. ‘그것을 알려드림’이라는 컨텐츠로 유명한 진용진(J)씨 이야기다. 폭로전의 상대방은 이여름(Y)씨. 서로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주장한다. 

가스라이팅? 어감이 자극적이어서 유튜버들이 유행처럼 쓰는 말인데, 원래 가스등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J와 Y는 서로 호감을 가지고 만나다가 금전 문제가 얽히고, 이용하려 했다느니, ‘급’이 다르다느니 막말이 오갔다. 특이한 건 카톡과 통화 내용이 본인들 계정이 아니라, 타 유튜버들에 의해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언론도 그 내용을 카피해서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자극적인 부분만 발췌하기도 하고 풀버전이라고 날 것 그대로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들 컨텐츠의 댓글도 다 합치면 수만 건은 족히 넘을 것 같다. 

강 건너 싸움 구경이지만, 잠깐만 훑어봐도 살벌하다. 구경꾼들은 J와 Y에게 입에 담기 힘든 험담과 저주를 퍼부었다. J와 Y는 심히 걱정스러운 심약한 발언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중단했다. 걱정된다. 진짜 걱정된다.

과거 유명인들의 사생활이 폭로되며 비극적인 결말을 빚은 일을 적잖이 보아왔다. 모함과 조롱의 댓글은 ‘악플 살인’, ‘손가락 살인’이라고 한다. 기사나 인터넷 카페에 남기는 댓글은 충분히 무섭다. 하지만 유튜브의 위력은 더 어마무시하다. 악플이 권총이라면, 유튜브는 텍스트, 사진, 영상이 무차별 사방으로 터지는 수류탄이다. 

만 10세 이상인 한국인은 하루에 평균 59분 동안 유튜브를 시청한다. 10대는 한 달에 2800분, 20대는 2500분이나 유튜브에 노출돼 있다. 사용자수와 총 사용시간으로 보면 50대 이상이 전체의 25%를 넘어 가장 많이 본다. 

그럼 이젠 유튜브를 많이 봐서 거의 다 본 것 같다고? 천만에.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유튜브의 세계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아주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도 전혀 다른 유튜브의 세계가 펼쳐진다. 심지어 가족이나 애인도 완전히 다른 유튜브 세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신은 이제 세례 받았다!” 

‘돈비이블’의 저자 라나 포루하가 빅테크 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소비에 가하는 일침이다. 실제 구글 최고경영자는 “구글은 단순한 사업 그 이상이며, 정신적인 힘”이라고 했다. 구글이 가진 매우 영적인 접근 방식을 인정하는 걸까.

이쯤 되면 작은 깨달음이 뒷목을 스산하게 스치운다. 유튜버 J와 Y가 아니라, 싸움 구경하고 있는 나 같은 자들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거 아닌가? 구글이 나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하고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남의 연애 진실공방에 조회수를 높여주면서 멍 때리고 있다니. 

작년 언젠가 ‘실시간 검색어는 몇 명이 검색해야 할까?’라는 신박한 제목에 이끌려 유튜버 J를 알게 됐다. 이후 업로드 되는 영상을 몇 개 더 보았더니 어느새 유튜브는 나와 J를 알고리즘으로 묶어버렸다. 뉴스나 요리 컨텐츠를 보다가도 뜬금없이 J의 ‘그것을 알려드림’ 새 영상이 유튜브 창 오른쪽에 출몰해 클릭을 기다린다. 또 7080 가요 듣기 후에도 추천 영상으로 J의 영상이 자동 재생되기도 한다.

오늘(7일)은 서울, 부산 시장 보궐 선거일이다. 각 후보자들의 정책적 주장도 많이 들었지만, 그 못지 않게 도쿄 아파트, 내곡동, 생태탕 같은 키워드에 묻혀서 지난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반복적으로 보여 준 것은 무엇인가.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이는 빅브라더 ‘구글’은, 우리에게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나.

(다음 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글. 이인상 칼럼리스트. 항상 세상과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현재 문화미디어랩 PR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으며, LG그룹 • 롯데그룹 등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dalcom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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