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Free!] 만원버스 출근길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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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Free!] 만원버스 출근길 아나키즘
  • 박주범
  • 승인 2021.04.2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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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만원버스 안. 생계 때문에 오늘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뒤엉켜 있다. 등을 비비고 마스크 코가 맞닿아을 정도로 서로 밀착돼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그건 투표할 때나 야구표 살 때 떨어져 서는 ‘쇼’를 지칭하는 말이다. 만원버스이나 만원지하철로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그렇다. 공원 같은 야외 시설을 거리 두기 때문에 폐쇄한다는 지자체 현수막은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웃픈 넌센스다.

버스 안에서 앞 사람 뒷통수가 민망해 들여다 보는 스마트폰 안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LH라는 지상낙원이 세상에 알려진 지 몇 달이 됐건만, 환상적인 그 세계의 곳곳에서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비리의 놀이기구들이 매일 매일 새롭게 파헤쳐진다. 땅으로 돈 벌어 이제 만원 버스로 출근할 일이 없어졌을 수많은 LH OB(은퇴자)들을 상상하며, 오늘도 새롭게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는 그들의 채용비리들를 바라보며, 그들은 들어갈 때도 하늘 신, 땅 신의 점지를 받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는다. 

권력은 태생적으로 악인가 싶다. 완장을 달아주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 지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여성 예술가의 나체 앞에서 뭘 해도 좋다고 허락 받은 군중이 얼마나 가학적인 좀비로 변하는 지 확인한 실험도 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는 간수 역할만 주어졌을 뿐인데, 악이 휴머니티를 이기는 끔찍한 결과를 목도하기도 했다.

통치나 경영을 인간에게 맡기면 과연 '공정'을 기대할 수 있는 지 진심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에게 땅을 맡겨서는 안 되었던 것인가. 그럼 생선을 고양이 대신 AI에게 맡기면 어떨까. AI가 무슨 근거로 더 안전하냐고? 우리는 이미 생명을 AI에게 맡기고 있는 중이다. 버스기사 대신 AI가 운전하는 출퇴근을 예전부터 꿈꾸고 있지 않은가.

생명도 맡기는데 땅 까짓 것을 못 맡길까. 목숨 달린 수술도 AI가 하는데, 운전도 시키고 토지개발도 시키면서 정치를 AI에게 맡기면 어떨까. 

나무는 서로가 서로를 키워 통치하지 않고도 숲을 만들지만, 인간은 그렇게 못할 것 같다. 탐욕 때문에. AI가 힘이 세지면 인류를 위협할 거라고? 맞다.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나는 인간이 더 무서울 것 같다.

사진=canva

글. 이인상 칼럼리스트. 항상 세상과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현재 문화미디어랩 PR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으며, LG그룹 • 롯데그룹 등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dalcom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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