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애시앙 화재 40일...대피소 이재민들, "코로나 공포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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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애시앙 화재 40일...대피소 이재민들, "코로나 공포 시달려"
  • 박홍규
  • 승인 2021.05.20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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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KF94 코로나 방역 마스크를 뚫고 코끝을 파고 들었다. 

'아직 화재 정리가 끝나지 않았나.'

화재 현장 앞에는 피해 이재민들이 설치한 텐트와 현수막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부영애시앙 주상복합 건물에 화재가 난 날은 지난 달 10일. 상가 1층 한 식당에서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불은 삽시간에 상가와 아파트 건물을 집어 삼켰다.  

그후 40여일이 지났다. 입주자 대표위원회(입대위)와 상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부영과 보상에 대해 지루하고 기나긴 줄다리기 회의를 계속해왔다. 부영은 현장 감식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상과 관련한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을 수 없다는 태도다. 살 곳을 한순간에 잃은 입대위 주민들과 생계 터전이 하루 아침에 불타버린 비대위 상인들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줄곧 대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윤리적 보상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취재 중 우연히 만난 상인 A씨는 "장사는 멈췄지만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 학원비, 날아오는 대출금 청구서 등 꼬박꼬박 나가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데 보상은 커녕 복구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실제 현장에서 본 상가동 복구작업은 그을음과 분진을 제거한 정도였다. 화재가 발생한지 40여일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복구는 기미 조차 보이지 않았다. 

피해 주민들 상황도 녹녹치 않았다. 가장 피해가 컸던 상가동 입주민들은 아직 가시지 않은 그을음과 냄새로 한 달 넘게 텐트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밀집된 한 공간을 다른 이재민들과 함께 쓰면서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무엇보다 크다고 했다.  

피해 주민 B씨는 "아직도 집안 곳곳은 그을음 투성이에요. 부영은 공용공간과 녹아내린 배수관, 환풍시설 등을 생활할 수 있게 복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건물 밖은 이렇게 냄새가 심한데 실내인들 오죽하겠어요?"라며, "아무리 닦고 쓸어내도 까만 먼지가 곳곳에서 나옵니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피해 주민인 K씨는 "당장 입주가 가능하다고 부영은 얘기하지만 아이들 방과 검게 변해버린 옷가지와 침구류, 사용할 수 없는 주방도구 등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는데 입주하라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라며, "부영 직원들은 (입주가 가능하다라고) 말만하지 말고 직접 살아봤으면 좋겠다"라며 막막한 심정을 털어놨다.

사진 MBC뉴스투데이 캡처
사진 MBC뉴스투데이 캡처

부영애시앙 화재 발생 직후 전체 360여 세대 중 290여 세대는 이재민 신세가 됐다. 임시 대피소나 주변 숙박 업소, 또는 친척 집에 머무르며 복구될 날만 기다렸다. 현재는 대부분 다시 재 입주를 한 상태이지만 피해가 가장 컸던 상가동 주민 27세대는 아직도 텐트살이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이재민들에게는 제대로 누울 수 없는 불편함보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가 공포 수준으로 더욱 컸다. 

텐트 시위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입대위와 달리 상가 비대위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화재 발생 전 이곳 주민들은 모두 우리 고객이었어요. 우리야 생업을 잃었지만 그 분들은 살 곳을 잃었는데 우리는 그나마 돌아갈 집은 있잖아요"라며, "상가 비대위의 입장은 부영과 강경하게 맞서기보다는 입주민들의 보상 협상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화로 풀어가는 듯하다"고 한 상인은 전했다. 

지난 13일 화재에 대한 합동현장감식 1차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발화지점은 상가 1층 주방 가스레인지 부분으로 한정할 수 있다"는 소견을 냈다. 하지만 손님이 없어 음식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 가스레인지에서 불이 발생했는지는 현재로선 누구도 알 수 없다. 

남양주 남부경찰서는 "화재 발생 당시 중식당 관계자 말을 토대로 앞으로 종합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공식적인 조사결과가 나올 때가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겠다는 부영의 행태를 볼 때, 수사가 장기화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민과 상인들의 몫이 될 것은 뻔하다. 

부영은 비대위에 원상복구 시점까지 임대료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상인들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 수입은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고정지출 중 임대료 항목 하나 빠진 것 뿐이며, 복구 때까지 생활비는 또 어디서 구할 것인지도 상인들에게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현장을 떠날 때 불현듯 '피해 주민들에게 집 그을음 닦았으니 들어가 생활하라는 부영이, 상가 벽에 붙은 까만 재와 먼지를 털어낸 후 원상복구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박홍규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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