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산업 부흥?...잘 하던 업체 특허회수도 모자라, 물건 반입조차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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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산업 부흥?...잘 하던 업체 특허회수도 모자라, 물건 반입조차 막아’
  • 백진
  • 승인 2015.11.17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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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면세점, 기한 내 재고 처분 못할 땐 세관 공매로 넘어가거나, 소각하거나

세관 “면세특허 종료된 16일까지만 반입허가”, 워커힐 “기매입해 비행기와 배로 들어오던 물건은 공중으로 사라지란 얘기?”

“특허만료가 16일까지이기 때문에, 당장 내일부터 보세품 반입이 불가합니다” 14일 심사결과 특허가 만료된 워커힐면세점은 서울세관 직원의 안내에 그야말로 ‘카오스 상태’다.

심사결과 발표 직후 이뤄진 SK네트웍스 내부 회의에서는 아직 면세점 사업 향방에 대해 최종결정이 나지 않았다. 워커힐면세점은 산적한 현안부터 대책을 마련 중이었으나, 갑작스런 통보에 당장 정상영업이 불가능해 업무가 마비된 상황이다. 해당 세관에서는 “고시에 따라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 동안 기업에 사업정리를 위한 유예기간을 통보해 그 안에 매장과 재고물품을 정리하도록 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고를 사입해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라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워커힐 면세점 관계자는 “이미 기 매입해 항공과 선박을 통해 들어오던 면세품의 모든 항목에 반입금지 조치를 당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도 없고, 심사가 끝난 이틀 뒤 바로 통보가 왔다. 당장 특허권 회수도 억울한데, 재고품에 대한 처리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라며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미 매장 확장공사와 물류, 재고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온라인 쇼핑몰도 오픈 직전이었던 워커힐면세점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사진= 김형훈기자/ 워커힐면세점 시계 부티크 전경 사진= 김형훈기자/ 워커힐면세점 시계 부티크 전경

특허를 잃게 된 당사자는 물론이고 기존 대형 중소 사업자 모두 이번 조치가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한 중소중견 면세점 관계자는 이번 결과를 두고 “충격적”이라고 표현했다. “재고의 이동이 가능한 롯데보다 워커힐 면세점 상황이 더욱 우려스럽다. 중소면세점도 갱신이 1회 허용되는데, 10년 뒤의 우리 모습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찔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올해 초 각 명품 브랜드 매장별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했는데, 업체당 들인 비용이 최소 몇 억 단위고, 많게는 30억 가까이 들었다. 워커힐면세점 확장오픈 구역에 입점하려던 한 수입 쥬얼리 브랜드의 경우, 몇 십 억을 들여 매장을 꾸미고 있었으나 이번 특허철회로 지금까지의 작업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며 “계약해지의 사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모든 금액을 물어줘야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워커힐면세점은 시계보석으로 특화돼 상품 1개당 금액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단위 고가품이 많고,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 비용과 직원처리 문제 등 각종 비용을 계산하면 최소 한해 매출에 상응하는 손실액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0년, 2003년 면세사업에서 손을 뗀 AK와 한진도 당시 재고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폭탄세일’을 진행해야 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재고를 처리하면 다행이다. 그마저도 브랜드와 합의하지 않거나 팔리지 못한 상품은 관세법에 따라 ‘체화’된다. 운영인의 손을 떠나 세관으로 이관되는 이 체화 물품은 보통 공매로 넘어가거나 브랜드의 요구가 있을시 소각 처분된다. 당시 소각장에 세관직원과 동행했던 AK면세점 관계자는 “멀쩡히 팔리던 상품을 모아 불을 붙이던 그 광경은 참 뼈아픈 기억”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보세판매장운영에 관한 고시에서는 단순히 재고물품 처리에 관한 절차만 설명돼 있을 뿐, 특허회수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관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반품과 할인판매 외에도 다른 사업자가 양도받거나 하는 방법으로 재고를 정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기존업체들도 브랜드와의 관계와 품목구성의 상이함, 재고부담 등으로 사실상 특허상실 업체가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실제 세관에서도 해당기업이 사업 정리하는 과정을 안내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 면세업계 고위 관계자는 “수습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 사업권을 스스로 반납한 것이 아니라, 심사에서 탈락해 운영권을 빼앗긴 첫 사례이기 때문에 어떤 특단의 조치라도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안마련에 대해 관세청은 아직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세관 직원들 역시 고시에서 지시하는 내용대로 일 처리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곤란한 입장이다. 관련 법안 자체에서 판매되지 않은 재고에 대해 처리기간과 반송, 양도에 관한 내용만을 담고 있어 뚜렷한 가이드가 없는 상황이다.

이로써 관세청은 ‘비밀심사에 집중하느라 특허 상실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없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면세점 특허가 지닌 재고부담에 대한 내용은 면세사업의 자격요건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에도, 관세청이 이를 충분히 신경 쓰지 못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업체가 떠안게 된 상황이다. 5년 특허라는 면세점 사업권의 제도적 보완 없이 비밀심사에 의지한 결과발표와 더불어 특허회수에 대한 충격 흡수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이 면세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바꾼 법이지만, 결국 족쇄가 된 셈이다. “잘 영업하고 있는 업체의 특허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재고관리 자체를 막는 게 면세산업 발전에 있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업계의 물음에 관세청과 정부의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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