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점이 80점 되고 80점은 20점…면세점 특허 '이상한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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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점이 80점 되고 80점은 20점…면세점 특허 '이상한 계산법'
  • 조 휘광
  • 승인 2018.09.04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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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평가점수가 관세청 심사에도 50% 반영
입찰가격 점수 비중 확 커지면서 당락 좌우
심사위원조차 "당혹감 느껴"…공정성 논란 잠재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허탈함과 당혹감을 느낀다. 이런 심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달 28일과 30일 연거푸 열린 관세청 보세판매장(면세점) 특허심사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심사위원의 푸념이다. 28일은 김포공항과 청주공항 면세점 심사가, 30일은 인천공항 DF11구역에 대한 관세청의 최종 심사가 열린 날이다.

이 심사위원 얘기의 요지는 심사위원으로서 현장에서 평가한 대로 입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사현장에서는 보통 해당업체 사장이 참석해 자사의 강점을 중심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심사위원은 이를 들어보고 미리 제출된 서류를 꼼꼼히 비교해서 평가에 반영한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A업체가 월등한 것으로 평가되는데도 B업체가 최종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허심사위원회 평가는 당락 영향 못 미쳐

최근 사업자 선정 결과만 봐도 특허심사위원회 평가는 당락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인천공항 DF11구역을 낙찰받은 그랜드관광호텔은 특허심사위원회 평가에서 390.49점을 얻어 에스엠면세점(402.50)보다 12.1점 뒤졌지만 인천공항공사 평가점수에서 무려 70.36점이나 앞섰던 때문에 여유있게 사업권을 획득했다. 청주공항면세점도 마찬가지다. 사업권을 획득한 두제산업개발은 위원회평가에서 무려 67점 이상 뒤졌지만 공항공사 평가에서 81점이나 앞선 덕분에 사업권 획득에 성공했다.

앞의 심사위원은 "위원들이 보기에 근소한 차이로 첨예한 경합을 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사업자간 역량 차이가 꽤 나고 이에 대해 다른 심사위원들과 의견이 일치할 경우에도 결과는 달리 나올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려면 관세청이 주관하는 보세판매장특허심사위원회의 평가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세판매장 즉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2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우선 면세점 시설관리권자(공항공사)가 입찰참가자를 공모해 평가를 하고 상위 2개 업체를 선정해 관세청으로 넘긴다. 관세청은 넘겨받은 2개 업체를 대상으로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허심사위원회'를 소집해 최종적으로 1개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 사업능력 VS 입찰가격 점수 반영비율 180도 역전

인천공항공사의 1차평가는 보통 사업능력(서류)점수 60%, 입찰가격점수 40%를 반영해 평가한다. 한국공항공사는 사업능력 80%, 입찰가격 20%를 반영한다.

이 점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관세청 최종심사에도 반영된다. '운영인의 경영능력'이라는 항목으로 50%(500점)가 반영된다. 즉 관세청 심사점수 1000점 가운데 500점은 1차평가 점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격 점수 비중이 확 늘어난다는 점이다. 관세청 심사기준에 보면 '운영인의 경영능력'(500점)은 '사업의 지속가능성'(100점)과 '재무건전성 및 투자규모'(400점)로 나뉜다. 이 중 '재무건전성과 투자규모'는 '시설관리권자로부터 통보받은 입찰가격 평가결과를 반영'한다고 돼 있다.

다시 말해 1차심사 단계에서는 40%(또는 20%)에 불과하던 입찰가격점수가 2차평가에 올라가서는 80%로 비중이 역전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관세청 심사 총점 1000점 중에 400점은 입찰가격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이 '이상한 계산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격 외 심사항목에선 점수차 벌리는 데 한계

또하나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 입찰가격을 제외한 나머지 심사항목(보세구역 관리역량, 관광인프라 등 주변환경요소, 사회환원 및 상생협력)에서는 큰 점수 차이가 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입찰가격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나면 다른 요소로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운 구조다.

입찰가격만 차별성 있게 써내면 나머지는 웬만하면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결국 심사의 공정성 논란으로 연결된다.

최근 인천공항 DF11구역이나 청주공항 사업자 선정 결과와 달리 지난 6월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DF1, DF5 구역 입찰 때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고도 탈락한 바 있다. 당시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1차평가에서 탈락해 관세청 최종평가에는 올라가지도 못했다. 이 때도 업계 일각에서는 공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인천공항은 자세한 심사결과 공개를 거부했고 '깜깜이심사'니 '(롯데가) 미운털이 박혔다'느니 비판과 억측이 돌았다. 심사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잡음에서 피해 가가 어려운 곳이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이른바 '시설관리권자'다.

최근 입찰에서 탈락한 한 업체 관계자는 "패널티가 몇 점인지 어디서 감점을 당할지 명확하지 않아 (입찰을) 준비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하면서 "심사를 민간에 맡긴 관세청과 달리 공항 관계자가 절반 정도 들어가는 심사위원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제도 운용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관세청처럼 점수라도 공개하면 시원하겠는데 제도적으로 제제하거나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심사라는 의혹을 탈피해야 해묵은 공정성 논란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관세청 "기존 평가규정 반영"…근거 묻자 "확인해 봐야"

관세청은 전 정부 면세점 특혜 의혹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은 이후 공정성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특허심사를 민간위원회에 맡기고 심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 지적한 '이상한 평가기준'에 대해서는 문제를 못 느끼고 있는 듯하다.

관세청 관계자는 "공항공사 평가점수를 50% 반영하고 가격점수 비중이 2차평가에서 커지는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존 평가규정을 반영한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봐야 알겠다"고 답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공항공사가 심사를 전담하다가 관세청이 개입하기 시작할 때 만들어진 규정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하고 "아직도 면세점 특허심사 기준이 국민 편의 우선이 아니라 공사가 거둘 흑자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두에 거론한 심사위원이 느낀 허탈감도 단순히 심사결과가 자신의 판단과 다르게 나와서만은 아닌 듯 싶다. 그는 "결국은 돈의 문제, 즉 자본의 힘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오는 것은 아닌가 싶더라"며 속내를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특허심사위원회)투명성을 위해선지는 몰라도 심사가 지나치게 분업화됐고 오히려 심사위원은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면서 '누군가 장난을 칠 수 있겠구나' 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그의 우려가 기우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특허심사 관행과 제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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