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오는 17일 법정에 나란히 출석한다. 지난해부터 '국정농단 사건' 파기 환송심을 이어오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 부회장이 증인으로 신청한 손경식 CJ회장까지 재계의 거물들이 연초부터 법원을 찾는다.

■ '수동적 뇌물' 강조…이재용의 손경식 카드 통할까
서울 고등법원은 17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네 번째 재판을 심리한다. 이 부회장 측은 지난해 10월, 11월, 12월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된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수동적 뇌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박근혜 정부가 기업을 압박했다는 사례를 강조하기 위해 손경식 CJ 회장을 증인으로 내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해 11월 22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두 번째 기일에서 "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 손경식 CJ그룹 회장, 미국 코닝사의 웬델 윅스 회장 등 세 명을 양형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2018년 1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증언했다. 그는 2013년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을 퇴진시키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 부회장 측은 손 회장의 증언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수동적인 뇌물 공여라는 사정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재판부가 이 부회장 측의 '수동적 뇌물 공여' 주장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재판부는 지난 기일에서 이 부회장 측을 향해 "박 전 대통령의 거절할 수 없는 요구라고 계속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향후 정치 권력자로부터 똑같은 요구를 받을 경우 뇌물을 공여하겠느냐"며 "그런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 전까지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낸 특검은 "손 회장을 양형증인으로 신청하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김 교수의 경우 승계작업과 관련한 증언이 양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달쯤 최종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와 기나긴 재판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이 부회장의 어깨가 가벼워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 "선대로부터 받은 것" 최태원 VS "재산 형성 기여" 노소영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본격적인 '진흙탕 싸움'에 돌입했다. 최 회장은 2015년 12월말 한 일간지에 편지를 보내 노 관장과 이혼 의사를 밝히고 한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혼외자녀의 존재를 공개했다.
노 관장이 이혼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내자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지난해 의견 충돌로 조정은 불발됐고,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사건은 정식 소송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은 4번째 변론기일까지 진행됐다. 앞서 2차·3차 변론기일에는 노 관장만 참석했고, 지난해 11월 22일 진행된 4번째 변론기일에는 최 회장만 처음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5번째 변론기일은 이달 17일 서울 가정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소송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에 쏠려 있다. 노 관장은 위자료 3억 원에 최 회장의 SK 지분 절반에 해당하는 지분을 재산분할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의 가치를 현재 주가 수준으로 환산하면 1조 4000억 원 정도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노 관장은 SK의 2대 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노 관장이 보유한 SK 지분율은 0.01%에 불과하지만 최 회장 지분의 42.3%를 분할받을 경우 7.74%를 차지하는 것이다.
재계는 최 회장의 자산을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동산과 동산을 제외한, 대부분이 SK 지분 18.44% 등 유가증권 형태다. 원칙적으로 분할 대상 재산은 결혼한 뒤 함께 일군 공동 재산이어서, 최 회장이 보유한 회사 지분 등이 공동 재산인지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 관장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쟁점 사항이 될 수 있다. SK는 지난 1980년 유공을 인수해 정유 사업을 시작했고, 1992년에는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다가 '대통령 사위 특혜논란'으로 포기한 뒤 김영상 정부 때인 1994년 다시 사업에 진출했다. 이 시기는 그룹의 제2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법조계에서는 노 관장의 요구가 법원에 의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의 SK 지분 대부분이 결혼 전 상속 받은 재산이기 때문에, 결혼 이후 이 재산에 대한 노 씨의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1988년부터 30년 넘게 혼인 관계를 이어온 두 사람 같은 경우는 재산분할 대상이 폭넓게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록 기자 kdf@kd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