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와 10.26 궁정동 안가의 총성 [안창현의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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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10.26 궁정동 안가의 총성 [안창현의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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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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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10월 26일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큰 사건이 벌어진 날로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안중근 의사가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 세계만방에 우리의 정신을 드높인 의거일이고 또 하나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군사 독재를 이어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장면1.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45세에 초대 총리가 되어 사실상 권력의 최정점에 올랐고 정계를 떠난 후,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으로 제국주의에 의한 아시아 침략에 앞장서 대한제국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는 한편,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으며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런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기 위해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 플랫폼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타이 지로(森泰二郞), 만철 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꼬레아 우라(koper ypa : 러시아어로 코리아 만세)’를 외치면서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장면2.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여대생, 여자 가수 등과 함께 시바스 리갈을 마시면서 술판을 벌였고 엔카(演歌 : 일본의 대중가요)를 불렀다.

1944년 4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로서는 뼛속까지 왜색이 침투한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이 자리에서 차지철은 부마사태를 말하며 국민을 희생해서라도 강경진압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김재규의 총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사망, 유신체제가 무너지며 대한민국은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는 역사의 암흑기를 맞이했다.

두 곳의 총성이 일본과 친일의 심장을 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친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일지 모른다.

최근 “조선은 왜 망했나.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것인가”라며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발언, ‘식민사관’ 논란을 일으킨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국립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고 추도사 보도자료까지 냈지만,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 비대위원장은 조부의 친일 행적도 도마에 올랐다.

임선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조부가 창씨개명을 했다”며 “정 위원장의 조부는 지나사변(중일전쟁)의 공로자”라고 주장하고 일제가 작성한 공적조서도 제시했다.

임 최고위원은 이어 “오타니 마사오, 이 이름은 정 비대위원장 할아버지 정인각 씨가 창씨개명한 이름이다. 정인각 씨가 창씨개명했다고 조선총독부 신문에서 보도해줄 만큼 친일 인사”라며 “정 위원장 조부는 정 위원장이 일본이 국운을 걸고 청나라를 제압했다고 감탄해 마지 않는 바로 그 만주사변에서 공을 세웠다. 조선총독부가 만주사변 공로자 공적조서까지 작성해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 위원장 조부는 일본에 엄청난 금액의 비행기 헌납금을 모아 바쳤고 군수물자 조달 공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식민지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에 충성하라는 시국 강연회를 열고 국방 사상 보급에 앞장섰다는 공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을 맞은 우리는 친일파를 제대로 척결하지 못했고, 77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대대손손 권력과 부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독립운동을 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과 그 가족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나라를 빼앗은 자들에게 협력한 자와 그 가족은 호의호식하는 나라가 정상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최근 발견된 중국의 만주 지역지가 보도한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을 한시바삐 발굴해 국내로 모셔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며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며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게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라는 말이 귓전을 때린다.

한국면세뉴스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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