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품 현장인도 제한 '또 하나의 규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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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품 현장인도 제한 '또 하나의 규제' 논란
  • 조 휘광
  • 승인 2018.08.2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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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 불법유통 방지 조치…업계 "수조원 타격 우려"
규제 완화 흐름 역행하고 중소·중견기업에 최대 피해

▲ 관세청이 시내면세점에서 구매한 물품 현장인도를 제한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업계 현실을 외면한 규제 일변도의 반쪽짜리 규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은 국내 한 시내면세점 매장.


시내면세점에서 판매한 물품의 '현장인도'를 제한하겠다는 관세청 조치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 반론이 일고 있다. 일부 중국인 보따리상(다이궁)의 불법유출 행위를 막기 위해 모든 면세점과 보따리상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냐는 비판이다. 이번 조치는 면세품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업자에 대한 단속이 빠진 반쪽짜리 규제로 강행할 경우 결국 가장 피해는 국내 중소중견 업체가 떠안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일고 있다.


◆ 현장인도 규제 카드 왜 뽑았나

정부는 그동안 외국인이 시내면세점에서 구매하는 면세품 중 국산품에 한해서는 구매 후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현장인도'를 허용해 왔다. 외국인 관광객 쇼핑편의와 국산품 판매촉진을 위해서다. 이런 혜택을 악용한 일부 업자들에 의해 면세품의 불법 국내 유통이라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현장인도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현장인도 제한조치를 취했다는 게 관세청 설명이다.


규제는 당장 다음달부터 적용된다. 항공권 예약을 자주 취소하거나 장기간 출국하지 않으면서 시내 면세점에서 빈번히 고액의 국산면세품을 사는 외국인에 대해 현장인도를 제한한다. 기업형 보따리상에 고용된 사람들이 면세점에서 산 물품을 대량으로 불법 유출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출국 항공권을 예약하고 시내면세점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해 다이궁에게 넘기고는 항공권 예약을 취소하는 편법을 써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 시내 면세점에서 국산면세품을 사도 현장에서 물건을 받지 못하고 원칙대로 출국할 때만 받을 수 있게 된다.


◆ 실효성 있을까

관세청의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면세업계 관계자 A씨는 '다이궁들이 구매한 물건이 모두 국내에 불법유출되는 것도 아닌데 대량 구매 자체를 막겠다는 것은 빈대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며 "국내 불법 유통 규모와 루트부터 파악하고 업자에게 철퇴를 가하는 게 순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일부 기업형 보따리상과 불법매장들은 허술한 법망의 틈을 이용한 국내 유출로 막대한 이득을 취해왔다. 때문에 관세청의 이번 조치로 이들이 쉽게 영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면세점 관계자 B씨는 "일부 다이궁과 결탁한 불법 유통업자들체들 한 동안 잠수를 탈 지는 몰라도 오래 되지 않아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면서 "사업을 접기에는 그들이 그동안 봐온 이득이 너무 크고 달콤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변형된 방식으로 영업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B씨는 "다이궁들은 정보력과 적응력이 강하다. 불법매장이 지하로 들어갈 수도 있고 어떤 변종을 고안해 낼 지 모른다. 또 국내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은 많다. 그동안 다이궁들이 소수의 대리구매자 위주로 물품을 구매했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국내 체류 중국인을 구매 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반쪽짜리 규제" 비판 이유는

면세품 불법 유통의 두 축인 구매와 판매 가운데 구매를 담당하는 대리구매자만을 규제하는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있다. 면세품을 유출해 불법으로 판매하는 업자와 매장에 대한 단속이 빠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 C씨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 건데 수요는 그대로 놔둔 채 공급만을 규제한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라며 "시중 불법 매장 단속은 관세청 관할이 아니니까 만만한 면세점 판매만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 의지가 있다면 우선 불법판매 업자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게 순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면세점 물품이 내수시장에 흘러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세청은 이번 조치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면서 불법 유통 사례로 'B면세점 직원은 국내 화장품 판매업자와 공모하여 중국인 명의로 샴푸(17억원 상당)를 시내면세점에서 구매한 후 불법 유출'했다는 내용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지금부터 2년도 더 된 과거인 2016년 초 사례다.


면세점 관계자 D씨는 "면세품 불법 유출 건은 언론 보도 등으로 심심찮게 공론화 된 사안인데 관세청은 지금껏 모른 척하다가 왜 지금 뒷북을 치는 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만약 진짜로 관세청이 몰랐다면 그건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 면세점 산업 영향은

다이궁이 구매한 물품의 어느 정도가 국내에 불법 유출돼 판매되는 지는 전혀 알려지거나 집계되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 총액 약 14조5000억원 가운데 외국인 구매액은 10조600억으로 약 73%를 차지했다. 이 중 상당부분이 보따리상 구매액이고 이 가운데 극히 일부가 국내에 유출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국내 유출분을 단속하기 위해 수조원에 달하는 다이궁 구매를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A씨는 "사드 여파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급감한 가운데 국내 면세점 업계가 선전한 것은 외국인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보따리상의 역할이 컸다. 국내면세점 업계의 영업행태를 왜곡시킨 부작용이 있는 반면 어려운 시기 면세업계를 지탱해 준 긍정적 역할도 무시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면세점에 입점한 중소중견 브랜드, 그중에서도 중견 화장품 업체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화장품은 면세점 중국인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대표품목이다.


면세점 홍보 담당자 E씨는 "대기업은 좀 낫겠지만 여러가지로 취약한 중견기업는 손해가 클 것"이라고 말하고 "단순히 다이궁 매출이 타격을 받는 것보다도 면세사업에 대한 이미지 악화와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 규제 철폐라는 시대 흐름에 역행

무엇보다도 소비자 편의에 우선 순위를 두고 규제를 철폐하는 시대추이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입국장면세점 허용을 언급했다. 조세제도와 보세판매장 취지에는 어긋나지만 국민 편의를 위해 그동안의 정부 입장을 재검토해 보라는 주문을 했다. 대통령까지 면세점 업계에 관심을 표명하며 규제 완화를 요청한 직후 나온 관세청의 카드가 사안은 달라도 청와대와 '엇박자'라는데 의아해하는 관측도 있다.


E씨는 "이번 관세청 조치는 산업 진흥이나 규제 해소보다는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내 면세시장 축소와 이에 따른 외화수지 악화,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조치가 새로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적용단계에서 시간을 갖고 업계와 의견 조율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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