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수의 세상만사] 설득에는 TPO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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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수의 세상만사] 설득에는 TPO가 필요하다
  • 박주범
  • 승인 2020.05.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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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상가 중에 누구를 좋아합니까?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중에 있습니까?"

이들은 춘추전국시대에 왕들에게 자기 자신을 알리고 다녔던 유세객들이다. 유세(遊說)라는 말을 유세객으로 보니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난 달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단어다. 총선이나 대선 같은 선거철에 많이 보고 듣던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르면 유세는 자기 의견 또는 자기 소속 정당 등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님을 뜻한다. 즉, 위의 사상가들은 각 나라의 왕들에게 발탁되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며 뜻을 이루고자 했다.

필자는 특히 한비자를 좋아한다. 한(韓)비자는 진(秦)시황제에게 법가 사상을 제공하여 신임을 받았던 사상가로 ‘한비자’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한비자의 세난(說難: 설득의 어려움)편 강의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3시간 강연에 푹 빠졌다.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세난편에서 두 내용에 깊이 동감했다.

첫째, 상대방의 감정(속마음)을 정확히 알아야만 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속으로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에게 명분을 앞세운다면 절대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상황과 때에 맞는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한 신하가 임금의 신임을 얻었을 때는 임금의 마차를 어머니 병 때문에 거짓으로 사용하였음에도 효심이 깊다고 칭찬받았으나 시간이 지나 신하가 신임을 잃은 후에는 왕이 신하를 처벌하게 되었을 때 예전에 나의 마차를 허락도 없이 사용했다는 말을 하면서 가중 처벌했다.

당연히 강의 내용에 동감하면서도 한켠으로는 자신이 어느 입장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왕인지, 아니면 신하인지가 중요하다. 사상가들이 쓴 많은 글과 입으로 한 유세는 주로 신하로서 자신을 발탁해달라는 설득이었다. 사회생활에서 사장, 이사,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 중 어느 입장에 서는가에 따라 처신이 달라질 수 있음이 장삼이사의 힘든 점이다.

2015년 방영됐던 드라마 송곳에서 고구신 소장의 대사가 떠오른다.

“당신들은 안 그럴거라고 장담하지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거야.”

세월이 흐를수록 고소장의 대사는 더 뼈저리게 다가온다. 같은 현상이라도 예전에 바라보았던 시선과 현재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한비자가 진시황에게 자신의 주장으로 설득하였음에도 그의 최후는 비극적이다. 진시황의 책사 이사가 자신보다 뛰어나다 생각하여 한비자를 모함함으로써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신하가 아무리 뛰어나도 최종 결정은 그 조직(사회 또는 국가)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슬픈 현실이다.

2014년 개봉한 현빈 주연의 영화 '역린' 포스터

 

세난편에서 나오는 단어인 역린(逆鱗)은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세상을 바꿀 생각이 있더라도 나와 주변, 그리고 조직원의 상황을 먼저 볼 일이다.

TPO는 패션업계의 마케팅 용어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마케팅 전략을 세분화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음편히 약식으로 착용할 수 있는 간편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캐주얼 웨어를 강조하고, 사회인으로서 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소개되는 이들에게는 오피셜 웨어를 권유해야 한다. 

마차를 이용했던 같은 행동에 임금이 성을 낸 것은 그 신하의 TPO 선택에 문제가 있었음이다. 왕에게 신임을 잃었을 때 왕의 곁을 떠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임금의 역린을 건드려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글. 이길선 국민대학교 교수. 많은 이들이 공동체적 가치를 갖고 함께 도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정치·사회·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 벤처회사에 투자 및 조언을 하고 있다. gslee@kookmin.ac.kr

사진=픽사베이

박주범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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