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책방도 '가끔'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유 [임후남 칼럼-시골책방 편지]
상태바
시골책방도 '가끔'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유 [임후남 칼럼-시골책방 편지]
  • 박홍규
  • 승인 2020.10.30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쩌다 보니 연이어 이틀 동안 큰 행사를 치렀다. 지난 10월 23일 금요일 오후 2시에는 ‘시인 이병률 with 수클래식의 아름다운 위로’, 10월 24일 토요일 오전 10시에는 아동문학가 박혜선과 함께하는 ‘환경 동시 쓰기 대회’, 오후 4시에는 바리톤 임준식과 소프라노 박성연의 ‘듀엣 콘서트’.

이병률 시인과는 새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가 나온 직후인 9월, 독자와의 만남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동네서점 에디션과 함께 독자와의 만남 신청 일부를 먼저 받고, 에디션이 금방 마감되는 바람에 독자와의 만남은 행사 전에 다시 공지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경기콘텐츠진흥원과 경기동네서점전 관련 이야기를 하다 경기도에 있는 동네 책방주인들이 함께하면 어떨까 말이 나왔다. 종일 작은 책방에 콕 박혀 일하는 책방주인들에게 작은 휴식 시간을 갖게 하고 싶다는 담당자의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병률 시인만 초대하지 말고, 클래식 콘서트도 같이하면 좋지 않을까. 이왕 위로를 줄 바에는. 해서 행사가 조금 커졌다. 일반인 접수도 받고, 책방주인들도 초대하고. 물론 코로나19로 모임이 어려운 때이긴 하지만 야외에서 진행하는 행사이니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2.5단계까지 올라갔던 사회적거리두기도 1단계로 하향됐다.

그러는 사이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더니 급기야 밤에는 추웠다. 7시 행사를 2시로 급변경. 그런데도 하루가 다르게 온도가 내려갔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매일 기온 체크하는 게 일이었다.

드디어 행사 당일. 추웠다. 바람도 불었다. 그러나 50명이 넘는 인원이 안에서 할 수는 없는 일. 춥다고, 따듯하게 입고 오라고 말을 했지만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것.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텅 비어 있는 주차장도 인원이 많다 보니 주차도 누군가 신경을 써야 했다. 행사가 끝난 후 책방지기들의 모임과 간단한 식사 준비도 해야 했다. 머리가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야외 행사이다 보니 강의 형식이 아닌 토크 형식이 좋겠다 싶어 졸지에 이병률 시인과 마주 앉기로 했다.

시간이 되자 차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2시간 전에 와서 리허설 중이었다. 이병률 시인은 단풍철이라 차가 막혀 파주에서 무려 3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했다.

나무 아래 의자들이 놓이고, 사람들이 앉고, 드디어 이병률 시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햇살이 비췄다. 쌀쌀하지만 푸르고 맑은 날씨. 일상의 언어들이 이병률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꾸 낯선 언어가 됐다. 좋은 시인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의 언어가 그의 언어를 만나면서 점점 젖어 들었다. 춥고, 뒤이어 콘서트도 있어서 그만 끝낸다는 게 아쉽고 아쉬울 뿐이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생각했다. 

그와의 시간이 끝나고 연이어 클래식 콘서트가 진행됐다. 테너 진세헌, 이지훈 소프라노 임미령, 플루티스트 송민조, 피아니스트 조아라. 이들의 연주는 시의 세계에 젖어 들었던 사람들을 음악의 세계로 데려다 놓았다. 바람이 불고, 악보가 날아가고, 나뭇잎이 떨어졌다. 꿈 같은 세상.

낯선 세상에 가 있던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리고 책을 팔았다. 그리고 먼 곳에서 온 책방지기들을 위해 바비큐를 하고, 떡과 김밥, 국물 등을 준비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여앉았지만 그래도 날씨가 쌀쌀해 바비큐는 금세 식었다. 날씨만 따듯했다면, 생각했다. 모두 돌아가고 나서 앞치마를 풀고 나니 밤 10시. 캔맥주를 하나 따서 소파에 앉아 저린 발바닥을 주물렀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10시 아동문학가 박혜선과 함께하는 환경 동시 쓰기를 진행했다. 근처 용담저수지를 돌며 쓰레기를 줍고, 동시를 쓰고, 그걸 발표하는 시간. 어른들은 날씨가 쌀쌀해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났다. 행사가 끝난 후 아이들과 엄마들이 말했다.

"이런 행사, 자주 좀 해주세요"

나는 웃었다. 이 행사는 사실 지원받은 다른 행사에서 비용이 조금 남아 진행한 것이다. 지원받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몇몇 행사들.

오후 4시에는 바리톤 임준식과 소프라노 박성연의 듀엣 콘서트를 진행했다. 야외에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에 안에서 진행했다. 오전에 행사를 진행하고, 또 다른 회의에 참가하느라 미처 안에서 진행한다는 문자를 일일이 돌리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야외에서 하는 줄 알고 내복까지 입고 왔다고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바리톤 임준식과 소프라노 박성연의 연주를 보면서 또 생각했다. 이런 호사를 누리고 사는구나. 음악회를 하거나 작가를 초대하거나 할 때마다 그 행사에 함께하는 사람들도 누리지만 가장 먼저 누리는 사람은 책방주인인 나다. 어디에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겠는가.

한때 열심히 콘서트장을 찾아다닐 때 오가는 길이 고단해도 그 콘서트에서 받은 힘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가곤 했다. 콘서트장에서 연주자들이 튜닝을 시작할 때 떨리는 마음으로 앉아 있던 시절. 나의 일상은 그렇게 벗어나는 힘으로 버티곤 했다.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같은 시간, 같은 비용. 무엇에 쓸 것인가. 그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 같이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 다른 풍경으로 사는 이유다.

행사 덕분에 연이틀 책방이 북적댔다. 지금은 일요일 오후. 그런데도 책방에는 두 사람이 앉아 나의 서재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 읽고 있을 뿐이다. 조용한 책방.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매일 북적이면, 생각하지만 이내 아이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다 웃는다. 그럴 리가 없지. 시골책방이.

#시인 임후남은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사, 웅진씽크빅 등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시골책방입니다', '아들과 클래식을 듣다', '아이와 여행하다 놀다 공부하다', '아이와 길을 걷다 제주올레'가 있고,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가 있다.

김승태 에디터 kdf@kdfnews.com  

*이 칼럼은 포천좋은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