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내리면서 소비자에 이익 환원한다던 농심, 그게 슈링크플레이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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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내리면서 소비자에 이익 환원한다던 농심, 그게 슈링크플레이션이었나
  • 김상록
  • 승인 2023.11.15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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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올해 6월 27일 "7월 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한다"고 밝혔다. 당시 농심은 "지속적인 원가부담 상황속에서도 소맥분 가격 인하로 얻게 될 농심의 이익증가분 그 이상을 소비자에게 환원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후 오징어집, 양파링의 제품 함량을 줄였지만 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소비자를 생각하는 듯 생색을 냈지만, 결국 소비자들을 교묘하게 속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이 원가 상승 압박을 받을 때 소비자 저항이 거셀 수 있는 제품 가격 인상 대신 '양 줄이기'를 택하는 것으로 소비자에게는 '숨은 가격 인상'인 셈이다.

농심은 지난 2년간 가격 인상을 이어왔다. 2021년 8월 16일부터 신라면 등 주요 라면의 출고가격을 평균 6.8% 인상했다. 라면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2016년 12월 이후 4년 8개월 만이었다. 농심은 "최근 팜유와 밀가루 등 라면의 주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물류비, 판매관리비 등 제반 경영비용의 상승으로 인한 원가압박이 누적되어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3월부터 스낵 출고 가격을 평균 6% 인상했고, 9월 15일부터 라면과 스낵 주요 제품의 출고가격을 각각 평균 11.3%, 5.7% 인상했다. 농심은 당시에도 가격 인상의 이유로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를 비롯한 제반 경영비용 상승, 원재료 가격 급등을 꼽았다.

농심의 가격 인상은 실적 상승으로 전환됐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1일 "농심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라면 가격을 인상한 효과가 올해 3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신라면 더 레드의 판매 호조로 매출도 늘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스낵은 먹태깡이 지난 9월부터는 생산능력 확대로 월 20억원 수준으로 매출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신제품 판매 호조에 더해 팜유와 같은 원가가 안정돼 손익이 유의미하게 개선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7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마트에 농심 먹태깡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7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마트에 농심 먹태깡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농심은 3분기 연결기준 매출 8599억원, 영업이익 557억원을 기록했다고 14일 공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 103.9% 증가한 수치다. 농심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건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전년도의 저조한 실적에 대한 기저효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심의 경쟁사인 삼양식품도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이 작년 동기보다 58.5% 증가한 3352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434억원으로 124.7% 늘었다.

삼양식품 역시 2021년, 2022년에는 라면 가격을 인상했고, 올해는 삼양라면과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인하했다. 이들이 제품 가격을 내렸는데도 견조한 이익을 낸 배경에는 밀, 팜유와 같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으며 신제품이 인기를 얻고, 수출이 호조를 나타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흔히들 식품 업계는 제품 가격을 인상할 때 원자재 가격 상승을 주된 이유로 내세운다.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을 소비자가에 반영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원자재 가격이 내려갔을때 제품 가격을 인하한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비자는 이러나 저러나 가격이 오르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야하는 분위기다.

올해 농심이 제품 가격 인하를 발표한 것도 자발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기업이 밀 가격에 맞춰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는 발언에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을 가격 인하 배경으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부의 눈치를 봐서 가격을 인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농심 관계자는 15일 한국면세뉴스에 슈링크플레이션 논란 관련해 "2022년 9월,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가격인상을 진행했다"며 "원자재값 부담으로 소비자가 기준 200원 가량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중량을 조정해 가격인상 수준을 100원으로 낮췄다.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득이하게 중량 조정을 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농심의 입장은 가격을 한 번에 200원 올리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니까 100원만 올리는 대신 제품의 중량을 줄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인상됐고, 제품의 양도 줄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인가.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차라리 양은 그대로 두고 가격만 올리는 게 그나마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상록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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