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Free!] 달콤한 화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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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Free!] 달콤한 화해의 기술
  • 박주범
  • 승인 2020.11.19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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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11월 들어 제법 바람이 차가워지면 오히려 밖으로 나오는 놈들이 있다. 초코릿과 사탕 바구니가 편의점 밖 거리 진열대로 나온다. 11월 11일, 숫자 1만 네 개, 일명 '빼빼로데이'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어느 11월 11일, 경남 한 학교에서 여학생들끼리 "살 좀 빼라"고 놀리며 빼빼로를 나눠먹기 시작했다. 이를 제과회사에서 발빠르게 마케팅에 사용하며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1996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빼빼로 1년 판매량의 50~60% 가량이 11월에 나갈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롯데 빼빼로 대체과자라는 오리온 통크, 해태 초코픽도 불티나게 팔린다. 중순 넘어까지 사는 통에 물량들이 거리에 마트에 넘친다.

이 맘 때 나는 후배와 그가 건넨 초코 과자를 떠 올리곤 한다.

10년 전쯤 일이다. 회사 후배 한 명이 내 자리로 와서 업무적인 이야기만 잠깐 하고 갔다. 그의 손에 뭔가 쥐어져 있었는데, 그가 떠나고 그것이 내 책상 위에 있었다. 당시 에너지바라고 불리는 과자였다. 평소 간식을 그닥 즐기지 않았지만, 며칠동안 그 과자를 두고 보다가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한 어느 날 커피와 함께 요긴하게 먹었다.  그 일 보름 전 쯤부터 그 후배와 업무적인 일로 살짝 껄끄러움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가 두고 간 에너지 바를 여러 날 두고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운 놈 에너지바 하나 준 건가. 말 없이 이렇게 화해를 청하는 방법도 있구나 싶었다. '예고 없이 남의 에너지에 개입하고 가네. 하하 읍.. 화해 당한거네!'

그 이후 종종 에너지바를 이용한다. 관계 마사지용으로. 아예 에너지바를 30여개 들이 봉지를 책상 서랍에 사 쟁여 놓는다. 한 두개씩 미운 상사 책상 위에 올린다. 외부에서 온 손님도 출출할 시간에 병약한 안색이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에너지바가 지급된다. 여러 층을 쓰는 큰 회사에선 오랫만에 찾아 온 동료가 있게 마련인데 예외가 없다. 

서랍을 열 때마다 에너지바가 보이니 누군가에게 건넬 타이밍을 노린다. 성공률은 꽤 높다. 한 손에 먹고 난 에너지바 껍질을 쥐고 사라져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흡사 수트에 에너지 충전을 마치고 떠나는 아이언맨의 뒷모습이다.

내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확실하게(?) 피해자일 때도 그냥 꺼낸다. 그를 영원히 안 볼 게 아니라면 속으로 '에잇 미운 놈'하면서 건넨다. 그 후배가 했던 것처럼. '이것 좀 먹어봐' 따위의 부연설명은 하지 않는다.

관계는 관리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는다. 나이, 위아래는 상관 없다. 매니지하는 쪽이 리더다. 관계가 위기에 놓일 때는 주로 옳다 틀리다, 선하다 악하다 중 어느 한 쪽이 아니다. '서로 다르다'일 때가 훨씬 많다.

최근 취업포털 인쿠르트 설문 결과에 따르면 퇴사이유 1위는 상사의 잔소리이고, 2위는 대인관계라고 한다.

빼빼로도 좋고, 통키도 좋고, 에너지바도 좋다. 꼭 제철 귤이나 목캔디면 어떤가. 우리 일터의 온기를 살짝 덥혀 줄 창의적인 소품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주고 받아야 할 날을 따로 정하지 않고 말이다.

글. 이인상 칼럼리스트. 항상 세상과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현재 문화미디어랩 PR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으며, LG그룹 • 롯데그룹 등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dalcom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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